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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인권 선언 (2) 두 차례 세계대전과 국제 연맹 (국제 연합의 등장)

인권의 이해

by 뜌뜌뜌뜌뜌 2023. 7. 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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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국제연합의 등장
 끔찍한 전쟁을 겪은 인류가 철저한 반성의 의미로 만든 것이 바로 국제연합(UN: United Nations)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잔학한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반성하면서, 국제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국제기구 설립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에 연합국들은 국제연맹의 실패를 거울 삼아 보다 범세계적이고 강력한 국제기구를 만드는데 합의했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은 1941년 의회에서 행한 연설에서 네 가지 기본적 인간 자유 즉, 의사표현의 자유, 신앙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에 근거한 세계가 건립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1942년 1월 1일 루스벨트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미국과 영국, 소련, 중국을 포함한 26개국의 
대표들이 연합국 공동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세계 최초로 ‘국제 연합’이란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1944년 중국, 소련, 미국, 영국은 덤바턴오크스에 모여 국제연맹을 계승할 새로운 국제기구의 제안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원칙적으로 평화를 원하는 모든 국가들이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는 데 합의하고, 유엔의 구체적인 구조와 기능을 창설하는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45년 얄타에서 소집된 회의에는 처칠(Winston Churchill, 
1874∼1965), 루스벨트, 스탈린(Joseph Stalin, 1879∼1953)이 모여 안보이사회의 투표 시스템과 소련 내 공화국들의 회원자격 규정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4월 12일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회의에서 강대국들과 유엔 가입 희망국, 비정부기구들이 참석하여 유엔기구들의 주요 기능들을 논의했습니다. 안전보장이사회(Security Council)는 전승국들이 상임
이사국으로 참여하고 이들이 모든 문제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유엔의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유엔총회(General Assembly)는 안전보장이사회와는 달리 다수결 투표제로 운영되며 구속력이 없는 결의안을 다루도록 했습니다. 경제사회이사회(Economic and Social Council)은 총회의 관할 아래 운영되며 수많은 위원회의 기능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도록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무국(Secretariat)은 관리와 공직자로 이루어져 있고, 유엔의 여러 기관들을 위해 행정과 통역, 인사, 관리 등 여러 사무 업무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유엔 결성을 위한 제안이 나왔을 때, 중소국가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는데, 이들은 샌프란시스코 회의가 열리기 두 달 전, 멕시코에 모여 신생 국제기구에서 강대국의 주도적인 영향력에 맞설 방안을 논의한 토론안을 샌프란시스코 회의에 제출했습니다. 여기에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필리핀 등도 가세했고, 칠레, 쿠바 등 여러 나라들이 유엔이 더욱
강력한 인권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그 결과 총회의 권위를 높이고 안전보장이 사회를 약화시키며 인권 관련 규정을 강화하는 개정안이 제출되었고, 많은 NGO 단체들이 이들의 편에 서서 강대국들을 압박했습니다. 이에 강대국들은 헌장과 그 전문을 수정하고 인권보호를 유엔활동의 핵심에 두도록 했습니다. NGO 활동가들은 1945년 5월 미국 국무장관 스테티니어스(Edward Stettinius, 1990∼1949)에게 보낸 비망록에서 미국 대표단이 인권을 유엔의 핵심적 목표로 두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유엔의 모든 회원국이 인권을 보장할 의무를 지도록 할 것과 인권위원회를 설립할 것 등을 촉구했습니다.
 사흘 뒤,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은 이 문제에 양보를 하기로 하고 인권에 관한 NGO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는데,그 결과 <유엔헌장>에 “우리 유엔의 인민들은 우리 생애에 두 번씩이나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인류에 가져온 전쟁의 불행에서 다음 세대를 구하고, 기본적 인권, 인간의 존엄 및 가치, 남녀 및 대소 각국의 평등권에 대한 신념을 재확인” 한다는 첫 구절이 포함되는 한편 그 뒤에 인권을 강조하는 내용이 추가로 포함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4일, 46개국의 비준으로 유엔이 창설되면서 인권 항목이 삽입된 <유엔헌장>을 승인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은 주요 전범들을 재판하기 위해 뉘른 베르크전범재판소와 도쿄전범재판소를 설치했습니다. 이곳에서 평화에 반한 죄(crime against peace), 전쟁범죄(war crimes), 범죄와 관련하여 자행된 인간성(인륜)에 반한 죄(crimes against humanity) 등의 죄목으로 전범들을 재판했습니다. 그 결과 뉘른베르크전범재판소는 
12명의 피고인에게 사형을, 5명의 피고인에게 장기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도쿄전범재판소는 7명에게 사형을, 16명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는데, 이 재판의 목적에 대해서는 역사에 교훈을 남기기 위함이었다거나 승리자의 정의를 구현했을 뿐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연합국 쪽이 저지른 전쟁범죄에 대해서는 전범재판소의 관할권 너머에 있고, 평화에 반한 죄나 인간성에 반한 죄는 그 법적 근거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국제법에 반하는 범죄를 저지른 개인, 즉 당사자를 처벌함으로써 국제법이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고, 인간성에 반한 죄를 처벌하게 됨으로써 모든 개인은 인간으로서의 보편적인 가치로 인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공고해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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