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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의 발달 과정 (7) 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역사 (책기시대 , 일본 식민주의의 도구화 시대 , 외국 원조 의존 시대)

사회복지 이론

by 뜌뜌뜌뜌뜌 2023. 7. 7.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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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역사

(1) 책기 시대
 우리나라에서 사회복지 사상의 근원은 고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쳐 왕가의 인정에 의한 민생구휼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간에서 행해진 두레, 품앗이, 향약, 계 등의 상부상조 활동도 구제사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
리나라의 전통사회에서는 흉년, 천재지변, 전쟁, 질병에 의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나 빈민과 불구자 등에게 식량을 제공하는 구휼제도가 실시되었습니다.

 

① 삼국시대
 삼국시대에 실시한 구민사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남세진, 조홍식,1999: 84).

 

• 관곡의 지급 : 정부가 각종 재해로 빈곤해진 백성에게 관곡을 배급하는 것.
• 사궁구휼 : 환과고독 (鰥寡孤獨) (홀아비, 바부, 고아, 무자녀 노인 등)의 무의무탁한 빈민에게 의류, 곡물, 관재 등을 지급하는 것
• 조세의 감면 : 재해로 심한 피해를 입은 백성들에게 조세를 감면해 주는 것.
• 대곡자모구면 : 흉년이 들었을 때 대여한 관곡에 대하여 원본 및 이자를 감면해 주는 것 하는 것.
• 진대법 (賑貸法) : 춘궁기에 색을 백성에게 대여했다가 추수기에 납입하게 하는 것

 

② 고려시대
 정인지의 고려사』에 의하면 고려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구제제도가 있었습니다.
• 은면지제 (恩免之制) : 개국, 즉위, 경사, 전쟁 직후에 왕이 백성에게 조세 탕감이나 각종 은전을 베푸는 것.
• 재면지제(災免之制) : 천재지변, 전쟁, 질병 등으로 인한 이재민에게 조세, 부역, 형벌 등을 감면해 주는 것.
• 환과고독진대(鰥寡孤獨賑貸) 홀아비, 과부, 고아, 무자녀 노인을 우선적 보호 대상자로 지정하는 것.
• 수한질여진대(水旱疾勵振貸) 곡식과 의류 등 각종 물품과 의료 및 주택 등을 급여하는 사업.


고려시대의 구빈기관은 흑창, 의창, 상평창, 유비창 등이 있었는데, 흑장은 흉년이 들었을 때 국가가 비축한 양곡을 무상으로 백성에게 배급하는 것이고, 의창은 정부에서 흉년, 전쟁, 질병 등 비상시에 대비하여 평상시에 곡물을 비축하는
것이며, 상평창은 빈민에게 곡식을 대여하고 추수기에 갚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빈곤한 환자를 구호하고 치료하는 동서대비원을 설치하기도 하였습니다.

 

③ 조선시대
 조선시대의 구제사업은 유교사상을 기초로 하여 왕이 백성의 불행에 책임지고 선정을 베푸는 왕도정치의 이념이 지배하였고, 국가의 책임감을 강조하였습니다.
구빈제도에는 곡물 저장을 통한 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비황제도와 직접적인 구빈 대책인 구황제도와 함께 의료를 위한 구료제도가 있었습니다.
• 비황제도 : 의창, 상평창, 사장(백가구 단위의 공동 축제)을 두어 구제하였음.
• 구황제도 : 사궁에 대한 보호, 노인보호사업, 음식 제공, 진휼 및 진대사업, 관곡의 연가매출과 방콕사업, 혼례나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자에게 비용을 조달해 주는 것, 향약 등을 포함하는 복지제도.
• 구료제도 : 의료기관인 혜민서, 동서대비원, 제생원, 제원 등을 설치하여 의료사업을 실시.

 

(2) 일본 식민주의의 도구화 시대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 조선총독부에 의한 구제사업은 천황의 인정을 강조하고, 식민지 국민들의 불만을 희석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습니다. 특히, 교화구제사업은 일본 자본주의의 목적을 달성하고, 조선 민중의 반일행위를 억압하려
는 목적에서 시도되었습니다. 1944년에는 조선구호령이 제정되어 생활보호제도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민간의 사회사업에는 기독교나 지주 또는 부자들의 자선 박애사업과 민족주의자들의 향토계몽사업 등이 있었습니다.

 

(3) 외국 원조 의존 시대
 이 단계는 미군정 시대, 정부 수립 이후 5 · 16 쿠데타 이전까지의 시기로서 정부 수립 및 한국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절대적 빈곤 상태에 있던 시기입니다.
 미군정 시대의 사회복지사업은 1945년 미군정법령 제18호에 의거하여 보건 후생국을 두고 이재민, 피난민, 실직자 등에 대해 식량, 주택, 의료구호를 실시하는 것이었으나, 임시 구호적인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정부 수립 이후에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국가 전체의 혼란과 절대적 빈곤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전쟁고아와 피해자, 상이자 등 수많은 요보호 대상자들에게 생활보호나 구호를 자선적이고 사후 대책적인 수준에서 시행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사회복지사업은 외국 원조단체의 시설보호와 물자구호 및 민간 차원에서의 자선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근대적 사회복지사업이 도입되기 시작했습니다. 1947년 이화여자대학교에 기독교 사회사업학과, 1953년 중앙신학교(강남대학교의 전신)에 사회사업학과, 1958년 서울대학교에 사회사업학과가 개설되어 사회사업교육이
도입되었습니다. 전문적 사회사업기관으로 1949년에 대한적십자사가 창설되었고, 1952년에는 한국사회사업연합회가 창립되었다가 1961년에 한국사회복지사업 연합회로 개칭되어, '사회복지'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우리나라에 등장하였
습니다. 그리고 1956년에는 국립중앙사회사업 종사자 훈련소(국립사회복지연수원의전신)가 창설되었습니다.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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