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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역할 (3) 인권의 진전 - 68혁명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인권의 이해

by 뜌뜌뜌뜌뜌 2023. 7. 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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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진전
(1) 가치와 질서에 저항한 68혁명과 영향
① 68혁명
 인권에 대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온 것은 <세계인권선언>이 만들어진 지 20년이 되는 1968년이었습니다. 1968년 봄, 파리 근교의 낭테르 대학교 학생들의 학내 문제로 시작된 시위는 곧 미국의 베트남 침략과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항의하는 시위로, 기성세대와 국가 권력에 저항하는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의 혁명으로 발전했고 이 투쟁은 68혁명(Mai 68)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동 서양 진영은 냉전을 핑계 삼아 국민들에 대한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68혁명은 인간의 가치와 이상을 우습게 여기고 물질적인 풍요만을 추구하는 기성세대와 사회 풍조에 저항했던 것입니다. 이들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공동체를 꿈꾸며, 자신들을 억누르는 모든 권위와 권력, 체제, 조직에 반대했습니다.
 이른바 ‘68혁명’은 독일 등 서유럽 여러 나라는 물론, 동유럽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중국, 일본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저항운동이 진행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베트남전 반대운동과 흑인 민권운동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저항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냉전구조와 매카시즘 같은 색깔론의 공세로 숨죽여 지내는 것 같아 보였던 민중이 드디어 역사의 전면에서 과감한 발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가장 광범위한 저항이었던 68혁명은 저항자들에게는 실패로 끝났으나, 가치와 질서에 저항한 사건으로 동 서양 양 진영에서 어느 정도 민주화를 이끌어 내는 성과를 거두는 등 기존의 정치문화에 자극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후 68혁명은 평등, 여성해방, 인권, 반핵 평화 운동, 공동체주의, 생태 등의 진보적인 이념들이 사회의 주된 가치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했으며, 인권 운동이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② 인권의 의미를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사람들
 그렇다고 인권이 늘 진전되어오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3년 미국의 두 번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략(2003년 이라크 침공, 2003 invasion of Iraq)할 때처럼, 인권이 전쟁의 명분으로 둔갑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또한 여전히 세계 각국의 시민들은 같은 인권이란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뜻하는 바가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부자 나라 사람들은 다이어트에 성공해 늘씬한 몸매를 갖고 필요에 따라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으며 100세까지 사는 것을 인권이라고 여기는 반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마실 물과 기초적인 식량을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인권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마실 수 있는 물을 얻기 위해 하루 일상을 모두 허비해야 하고, 끼니를 잇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포기해야 하는 극한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한 시대 상황에 따라 인권이란 말이 자주 쓰이는 시기도 있고, 그렇지 않고 경쟁력, 규제완화, 효율, 편리, 시장이나 성장 따위의 말이 더 자주 쓰일 때도 있습니다. 

 

③ 그래도 진전되는 인권
 더 넓은 안목으로 긴 세월을 살펴보면 인권은 분명히 진전되어 왔습니다. 마치 창조주가 흑백을 분리한 것처럼 여기던 미국 백인들의 폭력적 흑백분리 정책은 마틴 루터 킹 (Martin Luther King | 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 말콤 엑스(Malcolm X, 1925∼1965), 로자 파크스(Rosa Lee Louise McCauley Parks, 1913∼2005) 같은 흑인 운동가들에 의해 균열을 보이더니, 이제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완전히 사라져버렸고 흑인 최초로 버락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 1961∼ )가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아프리카 선주민들을 국민은커녕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도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 1918∼2013)의 대통령 당선으로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2)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처럼 군인들만 대통령이 되던 나라였던 한국의 경우에도 1987년 6월 항쟁 이후, 형식적인 측면에서나마 민주주의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6월 항쟁은 전두환 정권의 호헌(護憲) 조처와, 경찰에 의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조작 은폐, 이한열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부터 29일까지 전국적으로 벌어진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었습니다. 6월 29일 노태우의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直選制)로의 개헌이 이루어졌고 같은 해 12월 16일 새 헌법에 따른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6월 항쟁은 한국의 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각계각층의 사회 운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인권의 역할
 인권을 설명할 때, 흔히 ‘천부인권(天賦人權)’이란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이는 하늘이 사람에게 내려준 선물처럼 귀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실제로 인권은 하늘의 선물일수도 있지만, 그 인권을 누리는 것은 인권이 필요한 사람들의 끈질긴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역사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여성참정권의 경우에도 157년의 오랜 세월 동안 참정권조차 보장받지 못한 여성들의 끈질긴 그리고 치열한 투쟁이 계속되었다. 어느 날 갑자가 권리가 주어지는 적은 없었습니다. 
한결같이 인권이 필요한 사람들의 계속된 요구, 그리고 싸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합니다. 한국도 1894년 갑오농민전쟁 때 떨쳐 일어났던 민중의 투쟁을 시작으로, 1919년의 3.1혁명, 1948년의 4.3항쟁, 1960년의 4.19혁명, 1980년의 5.18혁명, 1987년의 6월 항쟁등 숱한 항쟁과 그에 따른 희생이 있었습니다.
 인권의 역할은 단지 사람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보장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할 자유를 행사할 수 있도록 촉진하는 데에 있습니다. 인권은 인권당사자들이 인권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각성하고, 마침내 투쟁하면서 진전됩니다. 그 인식은 “나도 사람이다.”,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매우 인간적인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체의식은 더 많은 인권을 상상할 수 있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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