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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역사 (8) 20세기와 두 차례 세계대전 - 제 2차 세계대전과 UN

인권의 이해

by 뜌뜌뜌뜌뜌 2023. 7. 2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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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2차 세계대전과 UN
① 민간의 대량사망
2차 세계대전은 1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더 야만적이고 비극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전체 사망자 중 60퍼센트가 민간인으로, 기계화된 전쟁 무기,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공격, 유대인 대량 학살이 낳은 결과였습니다. 또한 전쟁 당시에는 군사시설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의 거주지까지 목표로 삼은 대규모의 공습과 포격이 이루어졌습니다. 연합국
역시 독일의 드레스덴을 폭격하여 1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15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역시 사망자는 대부분 민간인들이었습니다.

 

② 유대인 대량 학살은 인권유린인가?
 한편 2차 세계대전 당시 자행되었던 유대인 대량 학살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인권유린이었습니다. 나치는 유대인들을 사회에서 쫓아내고, 유대인과 비유대인 간의 결혼을 금지하는 차별 정책을 폈습니다. 유대인 식별카드를 착용하게 만들었고, 재산을 몰수하여 게토라는 집단 거주 지역에 강제로 몰아넣어 학살했습니다. 이렇게 희생된 유대인들은 600만 
명이 달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치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집시, 장애인, 동성애자도 학살했습니다.
 엄청난 인명이 희생된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새로운 국제기구의 설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이 되었습니다. 전승국들은 국가 간 분쟁을 막고 사회정의를 고취하기 위해서 국제연맹보다 더 강력한 국제기구가 필요하다는 데 합의했습니다.
 1944년 중국, 소련, 미국, 영국이 모여 국제연맹을 계승할 세계기구의 제안을 구상하기 시작해, 전쟁이 끝나기 전에 유엔(UN: United Nations)을 결성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③ 국제연맹보다 더 강력한 국제기구
 주요 강대국, 유엔 가입 희망국, 비정부기구(NGO)들이 참석한 가운데 1945년 4월 12일에 소집된 샌프란시스코 회의에서 유엔 기구들의 주요 기능을 논의했습니다. 주요 전승국들이 상임이사국으로 참여하고, 이들이 모든 문제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안전보장이사회, 유엔의 모든 회원국이 참여하는 유엔총회, 그리고 집행부로서 사무총장 휘하의 사무국을 갖추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유엔의 조직과 활동 원칙을 규정한 <유엔헌장>에 인권을 포함시킬 것이지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일부 강대국들이 여기에 소극적이었던 탓입니다. 결국 약소국들과 NGO들의 노력으로 <유엔헌장>에 인권 항목을 삽입하게 되었습니다.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1946년 유엔의 경제사회이사회는 유엔 인권위원회를 구성하여 인권에 관한 국제적인 권리장전의 초안을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Franklin Delano Roosevelt, 1882∼1945)의 아내였던 엘리너 루스벨트(Anna Eleanor Roosevel, 1884∼1962)를 위원장으로 하고 중국의 철학자이자 외교관인 즈앙펑츈(張彭春, 1892-1957)이 부의장을 맡았으며, 레바논의 실존철학자이자 위원회의 보고관이었던 찰스 말리크 (Charles Malik, 1906-1987)와 프랑스의 법학자 르네 카생(René Cassin, 1887∼1976)이 핵심 인물로 참여했습니다. 그리하여 치열한 논의와 조정 작업 끝에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모든 인류가 ‘다 함께 달성해야 할 하나의 공통기준’으로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되었습니다. 소련을 비롯한 8개 국가는 기권했고, 반대한 국가는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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