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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인권 (2) 역량 이론과 자유를 주체행위로 보는 견해

인권의 이해

by 뜌뜌뜌뜌뜌 2023. 8. 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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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량이론
 그러나 인권은 의도적인 국가의 간섭을 억제했을 때에만 자유가 보장된다고 보지 않습니다. 
만일 인권이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권리를 행사하는데 제한을 가하는 다른 억압 요인들을 무시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자유를 가로막는 억압 요인들은 국가의 폭압이나 불관용으로부터 비롯되기도 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빈곤, 질병, 낮은 교육 등으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란, 간섭의 부재가 아니라 주체 행위 또는 진정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뜻하는 바를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자유의 본질적인 요소가 되는 것인데, 이것을 보다 더 확장하면 개인들의 역량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미국의 철학자 마사 너스봄(Martha Nussbaum, 1947∼)은 삶의 질을 측정하는 기초이자 정치적 계획의 목표로서 ‘역량’이란 개념을 인권에 도입했습니다. 너스봄은 역량 이론을 통해, 국민들이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헌법적 핵심 원리의 기초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너스봄은 어떤 역량 이하로는 인간이 진정으로 기능할 수 
없는, 역량의 하한선(threshold)을 설정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국민들이 이러한 역량의 하한선 이상을 지닐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가는 사람들의 역량의 하한선을 보장해 줄 적극적인 의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너스봄의 주장은 국가의 불간섭과 적극적 행동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더욱 설득력을 얻습니다. 빈곤 문제의 경우, 빈곤이 국가가 국민을 돕지 않아서(간섭하지 않아서) 발생한 것만이 아니라, 언제나 국가가 의도적이고 적극적으로 간섭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국가는 법으로써 소유권을 보장하기도 하고, 소유한 재산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보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예로,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먹지 말라고 명령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지만 배고 고프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집에 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게 만드는 것도 법입니다.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을 때 굶주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권리가 없을 때 굶주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빈곤이나 굶주림을 국가의 고의적인 간섭의 결과로 이해하든 자유의 장애물로 이해하든, 개인이 자신의 인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서 마땅히 인권을 보장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를 주체 행위로 폭넓게 파악하는 견해는 개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선택을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촉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선택’ 인데, 개개인의 주관적 선호를 지칭하는 ‘선택’은 개인의 자유에서 본질적인 것이므로 반드시 존중하고 인정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유를 주체 행위로 보는 적극적 견해에서도 
이러한 선택 개념을 그대로 쓸 수 있을 것인데, 국가는 개인의 주관적 선호를 존중하면서 그러한 선호를 촉진할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선택’의 사회적 성격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개개인은 자신이 처해 있는 현재 상황, 자기가 보기에 실현 가능한 수준, 자기가 몸담고 있는 권력 구조에 맞춰 자신의 선호를 조절합니다.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여성들이 육아 양육 등 기타 현실적인 여건 때문에 시간제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그것인데, 육아나 양육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좋은 정규직 일자리를 두고 굳이 시간에 일자리를 얻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취업을 앞둔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것도 -진짜 공무원이 되고 싶어서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뛰어난 스펙을 갖추어도 취업이 쉽지 않고, 그렇게 해서 기업에 취직한다 해도 언제 해고될 지 몰라 불안해하느니, 조금 월급이 적더라도 안정적이고 이런저런 스펙이 필요하지 않은 공무원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개인이 어떤 법적 사회적 조건을 
선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존재하는 법적 사회적 조건이 개인의 선호를 직접좌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애초부터 어떤 법적 권리가 없었던 사람은 그러한 법적 권리를 선호한다고 표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에게는 법적 권리라는 것이 처음부터 자기 가능성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선호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좌우될 수 있다는 사실은 국가에 적극적 의무를 부과하자는 주장에 더욱 힘을 실어줍니다. 선택의 자유를 증진하려면 실행 가능한 선택의 범위를 늘려주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되어야 하는데,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통해 선택의 영역을 확장해 줌으로써 자유를 촉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개인은 국가가 자율성을 위한 조건을 형성해줄 때에만 온전하게 자율적일 수 있는데, 국가는 개인의 자율을 증진할 의무가 있으므로 자율성을 위한 제반 조건을 마련해줄 필요가 생깁니다. 물론 국가가 국민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무조건 다 허용해준다는 말은 아닌데, 국가에게는 국민들이 가치 있는 목표를 추구하도록 장려하고 그렇지 않은 목표를 억제하는 조처를 취해야 할 적극적인 의무도 있을 수 있습니다.

 

(4) 자유를 주체행위로 보는 견해
 영국의 법철학자 조셉 라즈(Joseph Raz, 1939∼)도 국가의 적극적 의무에 관해 비슷한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라즈는 자유주의 국가는 사회 구성원들이 건전하고 가치 있는 인생관을 추구함으로써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공공 도덕성을 증진하는 것이 국가의 적극적인 속성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라즈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구상한 ‘해악 원 리’에서 ‘해악’의 범위를 넓혀서 타인의 상황을 개선해주지 못하는 것도 해악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는 국가가 개인의 자유에 정당하게 개입할 수 있을 때는 오직 사람들이 해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경우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국가는 어떤 개인이 자신의 자율성을 해치는 
행동을 하려고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강압적 조처를 내릴 수도 있다는 것으로도 바꾸어 말할 수 있다. 또한 국가는 개인이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선택과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개인에게 강요할 수 있다는 말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해악 원리에서 국가가 정당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단에는 제한이 따를 수 있습니다. 
국가는 정치적 수단을 동원해서 도덕적 이상을 추구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해로운 선택을 하지 못하도록 강제력을 동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강압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는 도덕적으로 해로운 선택이 해악을 끼칠 때이지만, 이런 경우라 하더라도 모든 강압적 방법이 정당화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유에 관한 적극적 견해에는 평등이라는 실질적 개념이 반드시 뒤따른데,  자유가 인간에게 근본적인 가치라면 몇몇 소수의 자유가 아닌 ‘모든 사람’의 자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자유를 ‘간섭하지 않는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그러한 자유를 잘 행사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적극적 자유는 국가에게 자기 권리를 온전히 행사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의무를 부과합니다. 그 의무로 인해 국가가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형편이 더 나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자원을 제공하거나 더 큰 조처를 취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국가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 의무라는 이름으로 국가는 특정한 가치를 국민들에게 강요하거나 국민의 기본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인권으로부터 비롯되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의 규범적 성격입니다. 인권에서 비롯되는 적극적 의무가 있다고 해서 국가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극적 의무가 국가에게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그 요구가 국가에게 소극적 의무에 비해 더 많은 운신의 폭을 허용하는 것도 아닙니다. 국가의 적극적 의무는 실질적 자유와 연대와 평등과 민주주의라는 목표를 증진하지 못할 때에는 정당화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인권에서 비롯되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는 그 자체로 국가가 자기 권력을 함부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한 것입니다. 국가의 적극적 의무 원칙은 국가가 행동함으로써 자유를 제한한 수 있는 것 만큼이나, 국가가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습니다. ‘간섭하지 않는 것’을 통한 개인의 자유 대신, 국민들에게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가능한 여러 선택들을 제공
해야 할 적극적 의무를 국가에 부과함으로써 개인의 자유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결론은 모든 적극적 의무가 인권이라는 틀 안에서 수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인권이란 가치를 명백하게 증진시킬 수 있는 의무만이 수용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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