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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역사 (5) 산업혁명 시대 - 참정권과 노동권을 위한 투쟁

인권의 이해

by 뜌뜌뜌뜌뜌 2023. 7. 23.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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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참정권과 노동권을 위한 투쟁
 영국 혁명, 미국 혁명,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여러 혁명들은 귀족 계급에게만 가능했던 참정권을, 원칙적으로, 충분한 재산(토지)을 소유하거나 일정 금액 이상의 세금을 납부한다면 모든 시민(백인 남성)이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가진 사람들과 노동계급 사이의 빈부격차가 커지는 상황 속에서 노동계급이 일정한 재산을 소유하고 참정권을 행사하기란 점점 더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따라서 19세기에는 참정권의 확대를 요구하는 운동이 곳곳에서 확산되었고, 이런 노력은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려는 시도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① 각 국의 참정권
㉮ 프랑스의 참정권
 프랑스에서는 1830년에 있었던 7월 혁명 후 헌법에서 왕권신수설이 삭제되고 국왕의 권력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선거제도상의 변화는 미적지근했습니다. 모든 납세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자는 제안은 토론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부르주아들만 선거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선거권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만 갔고, 1848년 제2공화정의 자유주의 신헌법 에 보통선거권이 포함되기에 이르렀습니다. 1848년 11월 4일 공포된 헌법은 20세 이상의 남성시민으로서 시민적 권리를 보유한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도록 했습니다. 
프랑스는 세계 최초로 보통선거권(남성에 한함)을 실시한 나라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선거가 실시된 지 두 달 만인 1850년 5월 31일 국민의회는 투표권에 재산자격 제한규정을 다시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미국의 참정권
 미국에서는 1822년경에 이르러 급속한 산업화로 인해 토지나 재산이 없는 노동자들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평등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내의 많은 이들이 선거법 개정에 반대했으며, 헌법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하라고 요구한 문자 해독 시험으로 인해 선거권(남성에 한함)은 더욱 제한되었습니다.
 흑인들에 대한 선거권 제한은 더욱 심했는데, 남부에서는 글을 모르는 백인일 경우에는 인두세를 납부하면 투표권을 허용했는데 흑인 중에서는 인두세를 낼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1870년대 남부에서 시작된 짐 크우 법 (Jim Crow laws)을 통해 대중교통, 학교, 공원, 공동묘지, 극장, 식당 등의 공공장소에서 흑백인종 분리정책이 강행되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흑인들의 투표권을 제한하고, 선거법의 제한만으로 흑인들의 투표권 행사를 막을 수 없을 경우에는 초법적인 조처를 하기도 했습니다. 문자 해독 시험과 법률적 차별, 강압적 정책으로 인해 흑인들은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었습니다. 짐 크로우 법 은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른 1954년이 되어서야 대법원으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았습니다.

 

㉰ 영국의 참정권
 영국에서는 1832년에 선거법 개정이 이루어졌으나, 여전히 일정 금액 이상의 재산을 소유한 남성에게만 선거권이 인정이 되었습니다. 이 개정선거법 에서 노동자들의 참정권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1838년 영국의 노동자들은 인민헌장 을 통해 보통선거권, 무기명 비밀투표 실시, 출마자의 재산자격 제한 철폐, 의원의 세비 지급, 인구수가 균등한 선거구제 설정, 매년 의원선거 시행 등을 요구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차티스트 운동입니다.

 그러나 차티스트 운동가들의 요구는 곧바로 수용되지 않았는데, 의회는 번번이 이들의 요구를 거부했습니다. 차티스트 운동은 힘을 잃었으나, 그 뒤로도 영국에서 선거권 확대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덕분에 선거권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범위는 점차 확대되었고, 계급에 따른 선거 관련 영향력은 1918년의 개정 선거법으로 종말을 고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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