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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여행 -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 동물에게는 고귀한 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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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뜌뜌뜌뜌뜌 2023. 7. 20.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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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픽사베이

로켓

 

로켓(Rocket)이란, 제트추진기관에서 연소시킨로켓 가스를 노즐로 분출시켜 추진되는 고속장거리 비행체를 말합니다. 문헌상에 남아있는 로켓의 기원은 12세기 중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격적으로 상용화된 건 2차 세계대전의 종전 무렵이었습니다.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을 비롯한 일단의 독일 연구진은 1937년부터 군사무기용 로켓의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그들은 마침내 1942년 10월,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대형로켓 'A4'의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A4로켓은 1톤의 폭약을 장착하고 5,500km/h의 속도로 520km를 날아갔습니다. A4로켓은 'V2'라는 별명내지 코드명으로도 불렀는데, 여기서 'V'란 보복무기(Verheltungswaffe)를 의미했습니다. 실제로 V2 로켓은 영국에 매우 큰 피해를 입혔는데, 2차대전 이후 냉전시기의 '로켓' 이란 두말할 것도 없이 핵탄두를 실어나르기 위한 대량살상무기, 즉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었습니다. 핵무기의 운반수단이 항공기에서 로켓으로 바뀜으로써, 로켓기술이 곧 군사력을 의미하는 우주경쟁의 시기로 진입한 것입니다. 1957년, 소련은 역사상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를 지구궤도에 쏘아올렸습니다.
 이듬해 미국 또한 인공위성 익스플로러를 지구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로켓개발 책임자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V2켓 개발자였던 폰 브라운 박사였고, 그는 이후로도 줄곧 미국의 우주 탐험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함으로써 지금껏 '미국 우주탐험의 아버지'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동물비행

 

1957년 11월 3일, 생명체로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라이카 (Laika)라는 개가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에 탑승하여 7일간 지구궤도 위에 머무는 데 성공했으나 살아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라이카는 시베리언허스키 계열의 잡종견으로 모스크바의 길거리를 헤매던 떠돌이 암개였습니다. 당시 소련 당국은 생명유지장치의 배터리가 소진되어 라이카가 고통없이 죽었다고 발표했지만, 2002년에 러시아의 디미트리 말라솅코프 박사는 당시 라이카가 우주비행에 나선 지 대여섯 시간 만에 과열
과 공포 속에서 사망했다고 뒤늦게 폭로했습니다. 1959년, 에이블과 베이커리는 원숭이가 미국의 우주선에 태워져 9분 정도 무중력상태를 경험한 뒤 무사히 생환했습니다. 본격적인 '우주비행'이라고 하기에는 매우 간단한 실험이었지만, 당시 에이블과 베이커는 <라이프>지의 표지모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몇년 후 다시 햄이라는 이름의 침팬지가 미국의 머큐리 계획에 참여하여 맹훈련을 마친 후 17분간 무중력상태를 경험하고 돌아왔습니다. 1960년 8월, 스트렐카와 벨카라는 개 두마리를 비롯, 쥐, 파리 등이 소련의 보스토크호에 탑승하여 하루 동안 지구궤도를 돌고 무사히 지구로 돌아와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여행에서 생활한 생물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스트렐카와 벨카는 지구궤도를 4번째 돌면서 발작을 일으켰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고, 불안감에 빠진 소련의 우주과학자들은 첫 유인우주여행 계획을 하루에서 공 전 한 바퀴로 축소했습니다. 같은 해 12월 프첼카와 무슈카라는 개들이 탑승한 소련의 우주선이 지구대기권으로 재진입하다가 전소되었습니다.
 1961년 3월 9일, 체르누슈카라는 개가 지구를 한 바퀴 돌고 무사히 귀환하는 데 성공했고, 3월 25일에는 즈베즈도츠카라는 개가 다시 궤도공전 리허설에서 무사히 생환했습니다. 같은 해 4월 12일,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귀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아폴로 프로젝트


 1961년 4월 12일, 역사상 최초로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보스토크1호를 타고 지구를 공전한 후 성공적으로 귀환했습니다. 2차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곧 군비경쟁이었고, 군비경쟁은 곧 기술경쟁이었습니다. 그런 국제질서하에서 소련의 유인 우주비행은 미국에게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가뜩이나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로 소위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져있던 미국은 자존심의 회복과 위기감의 극복을 위해 미항공우주국(NASA)를 설립합니다. 1961년 5월,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은, 60년대 안에 반드시 인류의 달착륙을 성공시키겠다는 대국민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기술시위에 자극받은 미국의 히스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차례의 동물실험 등을 통해 이미
인류의 우주비행은 미국이든 소련이든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게 그 무렵 전문가들의 인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우주비행을 마친 후, 더구나 달에 착륙한 후 다시 무사귀환한다는 것은 여전히 SF에서나 가능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케네디의 성명발표 이후로도 미국은 여러 차례의 실패를 겪었고, 이듬해 2월이 되어서야 겨우 지구의 궤도비행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1966년, 미국이 제미니8호로 우주상공에서 우주선 도킹에 성공함으로써 마침내 우주경쟁의 선두는 뒤바
뀌었습니다. 출범 당시 직원 8,000명, 연간예산 1억달러 규모였던 나사는 이 무렵 직원 40만명의 거대기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1969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30초, 미국의 아폴로11호에 탑승한 미국의 닐 암스트롱, 에드윈 올드린 등이 달에 착륙했습니다. 인류가 지구 아닌 다른 천체에 첫발을 내딛은 것입니다.

 

출처 : 북하우스 - 지식 e seaso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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